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구정 공세 (문단 편집) === 매스컴 : 사이공식 처형 === [[파일:external/upload.wikimedia.org/Nguyen.jpg]] [[베트남 전쟁]]의 가장 유명한 사진 중 하나. 사진이 유명하지만 동영상도 남아 있다. 1968년 2월 1일 촬영된 이 사진은 '사이공식 처형'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으며 사진기자 '''에디 애덤스'''에게 퓰리처상을 안겨주었다. 그리고 이 사진이 촬영되던 바로 그 현장에 [[동아일보]]의 김용택 사진 기자도 있었고 [[http://img.hani.co.kr/imgdb/resize/2013/1118/8001234901_20131118.JPG|체포되어 연행되는]] 사진을 찍기도 했다. [[소녀의 절규]]와 함께 베트남 전쟁과 관련된 가장 유명한 사진 중 하나로 미국의 베트남 전쟁 지지 여론을 한 순간에 돌려 놓은 사진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진을 찍은 에디 애덤스는 참전 찬성파였고 베트남 전쟁의 적극적인 지지자였다. 여기서 총을 든 사람은 '''응우옌 응옥 로안'''(阮玉鸞, Nguyễn Ngọc Loan)이라는 이름의 남베트남 국가경찰 총감독(공군 소장), 사살당한 남자는 베트콩 소대의 지휘자인 '''응우옌 반 렘'''(阮文歛, Nguyễn Văn Lém)으로 추정되는[* 확실한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다.] 인물로 시가전 중에 체포됐다. [[교전권|군복을 입은 것도 아니고 군사작전을 벌인 것도 아니기 때문에]] [[제네바 협약]]에 따른 전쟁 포로의 대우를 기대할 수 없던 처지였으며 당시는 구정 공세의 긴박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. [[http://www.nytimes.com/1998/07/16/world/nguyen-ngoc-loan-67-dies-executed-viet-cong-prisoner.html|#]] 또 렘의 아내에 대한 인터뷰 영상에 따르면 렘이 있는 부대는 후퇴를 하고 싶었으나 병사들에게 포위당했으며 오직 강으로 후퇴할 수 있었으며 렘은 부대원들의 퇴각을 지원한 후 체포당했다고 한다. [[https://youtu.be/Eld5aJHYx4M|#]] 그리고 결국 로안이 쏜 [[스미스 & 웨슨]]제 리볼버 [[.38 스페셜]] 탄환에 의해 절명하고 만다. 당시의 처형 장면을 볼 수 있는 영상이 있다. [[https://www.youtube.com/watch?v=R4Pm76YXcs8s|잔인한 장면 주의(유튜브 성인 인증 필요)]], [[https://m.ruliweb.com/community/board/300145/read/21313724|잔인한 장면 주의(움짤)]]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처형을 진행하는 동안 반 렘은 줄곧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었고 사진에서 울상을 짓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총알이 머리에 박힐 때 잠시 얼굴이 일그러지는 바로 그 찰나의 순간이 카메라에 잡힌 것이다. 총구가 살짝 위를 향하는 것에서 이미 발사됐음을 알 수 있다. 그야말로 완벽한 타이밍에 찍힌 사진. 영국 군사학자 맥스 헤이스팅스는 저서에서 당시 남베트남 군경의 기록에 따르면 렘은 베트콩 특작부대 소속으로서 36시간 전 남베트남군 중좌 응우옌 뚜언(Nguyễn Tuân)과 그의 가족을 몰살시킨 것으로 알려졌다고 하며 애덤스도 이것을 사실로 믿고 있었다고 서술했다. 실제 몰살시킨 것인지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서술했다. 일부에서는 위 내용을 근거로 극도로 분노한 경찰의 대량학살범에 대한 부적절한 [[즉결처분]] 정도로 비판받는 것에서 끝나야 할 사진이 '''"부패한 남베트남 경찰의 잔인한 사형"'''이란 내용으로 왜곡된 거 아니냐는 주장이 있었으며 30년이 지나서야 에디 애덤스가 직접 미국으로 망명한 응우옌 장군을[* 남베트남군 예비역 소장이기도 해서 애덤스는 응우옌 장군이라고 했다. 사실 베트남에서는 한국이나 영미권과 달리 사람의 이름을 줄여서 부를 때 성이 아니라 이름의 끝 글자로 부르지만 애덤스는 그건 몰랐던 모양이다.] 찾아가서 사과하기도 하였다. 로안 전 총감독은 저 사진의 사건으로부터 얼마 후에 [[테러]]를 당해서 다리를 다쳤고 1975년 북베트남군에 의해 사이공이 함락되자 결국 미국으로 망명하였다. 미국에서 피자 가게를 하며 살다가[* 1991년 그의 과거가 알려지면서 식당이 쇠퇴하자 은퇴를 이유로 가게를 닫았다.] [[1998년]] [[암]]으로 사망했고 죽을 때까지 비난에 시달렸으며 자신의 가게에 사람들이 찾아와서 욕을 하기도 했다.[* 에디 에덤스는 가게 영업 마지막 날 화장실에서 "우린 네가 누군지 안다. [[씨발|씨X]]놈아(We know who you are, fucker)."라는 낙서를 발견했다고 얘기하였다.] 중간에는 미국의 베트남 출신 [[전쟁범죄]]자들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추방당할 뻔했는데 이때 에디가 변호를 자처해 준 덕에 다행히도 추방은 당하지 않았다. 애덤스는 이 사건을 두고 ''''사진은 절반의 진실만을 말한다.''''고 말했다.[* [[http://www.time.com/time/magazine/article/0,9171,988783,00.html|#]] "나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쏘는 사진으로 1969년 퓰리처상을 받았다. 그 사진에는 죽은 사람이 두 명 찍혔다. 하나는 총알을 맞은 사람이고, 또 다른 하나는 응우옌 장군이다. 장군은 베트콩을 죽였고, 나는 장군을 죽였다. 진실로 사진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. 사람들은 사진에 찍힌 걸 그대로 믿지만, 특별히 조작을 하지 않더라도 사진은 거짓말을 한다. 사진은 절반의 진실만을 말한다. 사진이 말하지 않은 진실은, "만약 당신이 그 더운 날 그 시간 그 장소에 있는 장군이었고, 미군 병사를 하나나 둘, 셋 정도 쏴넘긴 '나쁜 놈'을 잡았다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?" 하는 것이다." 여기서 절반의 진실이라고 말한 건 루안이 100% 잘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. 즉결처분은 어떤 상황이건 정당화될 수는 없고 그 부분에서 비난받는 건 그가 감수해야 할 책임이다. 하지만 사진이 거기까지 이르게 된 사정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그냥 민간인을 즉결처분한 학살자로 내보낸 점에서 진실을 왜곡했다고 한 것이다.] 이때 루안 총감독은 '나는 내가 할 일을 한 거고, 당신은 당신이 할 일을 한 것이다.'고 말했다고 한다. 100% 무고한 게 아니고 전장에서의 범죄자 즉결처분은 비난받아도 할 말 없다는 점은 본인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. 여담이지만 렘이 학살한 남베트남군 중좌의 가족 중 유일한 생존자는 [[https://en.wikipedia.org/wiki/Huan_Nguyen|후안 응우옌]]인데 학살 당시 불과 9살 밖에 안되었다고 한다. 결국 1975년, 공군 대령이었던 자신의 삼촌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한 후 [[미 해군]] 소장까지 역임했다고 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